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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의 통찰력있는 무도인의 참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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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공권유술창업 작성일15-11-11 13:26 조회66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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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의 통찰력있는 무도인의 참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인류탄생이래 21세기에 들어서기까지 획기적인 발전을 거듭한 것은 0.1%의 창의적인 사람과 0.9%의 통찰력인 사람들에 의해서입니다.

 
나머지 99%의 사람들은 1%의 소수의 사람이 일구어놓은 업적을 이용하는데 있습니다.

이것을 역설적으로 말하면 99%의 대중들로 인하여 1%의 사람들이 업적을 창출해 내게 됩니다.

이러한 현상이 반복되면서 인간은 문명과 기술을 발전시켜 나가고 있습니다. 


1861년 니콜라우스 오토[Nikolaus August Otto]는 혁명적인 연구를 통해서 내연기관을 발명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이걸 자동차에 장착할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1886년 칼 벤츠는 “말 없이 달리는 마차를 만들겠다”며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칼 벤츠 이전엔 누구도 ‘말 없이 달리는 마차’를 상상조차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천재적인 감각을 지닌, 그래서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을 우리는 창의적인 사람이고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창의적인 극소수의 사람은 세계인구의 겨우 0.1% 뿐입니다. 


그 후로부터 한참이 지난 1800년 후반에도 엔진만 겨우 달린 형태의 기계를 ‘자동차’라고 이름만 붙여져 있을 뿐, 그래서 자동차라고 말하기도 조차 민망한 조잡한 형태를 띠고 있었습니다. 


이때 미국 미시간주(州) 웨인 출생의 헨리 포드 [Henry Ford]가 자동차의 미래를 예측합니다.

그는 멀지않은 미래에는 세계의 모든 가정에 자동차 한 대씩은 보유할 것이고 이걸 싼 값에 구매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핸리포드는 자신의 주장을 곧 발표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바보라고 비웃었습니다. 사기꾼이고 사이비라는 지칭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자동차는 기껏해야 4명뿐이 탈수가 없는 운송수단이고 보관하기도 곤란하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동차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기 때문에 한번 고장이 나면 이걸 수리한 방법이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엄청난 가격 때문에 누구도 자동차를 사지 않을 것이라는 99%의 다수들의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당시의 증기기관차는 한 번에 많은 사람들이 탈 수 있고, 저렴한 가격으로 원하는 곳을 이동할 수 있으며, 기차를 집안으로 들이거나 수리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99%의 사람들은 기차와 자동차를 줄곧 비교하곤 했습니다.


핸리포드는 비참한 마음을 추스리기 위해 자신의 자서전에 이렇게 글을 남김니다.

 
“기차는 선로가 깔려있는 지정된 방향으로만 달린다. 우마차를 타고 반드시 출발시간에 맞추어 기차역을 방문해야 하며, 이후 다시 최종목적지 까지 우마차로 이동해야 한다. 그러나 자동차는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어떤 장소든지 이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기차와는 비교대상이 될 수 없다. 반드시 자동차의 시대가 올 것이다.”

 
99%사람들이 '안돼!'라며 핸리포드를 사이비라고 외치던 군중들 속에는 오히려 핸리포드의 생각에 크게 공감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 이름도 유명한 존 데이비슨 록펠러 (John Davison Rockefeller) 입니다.


록펠러는 곧 자동차의 세상이 온다는 핸리포드의 주장에 동조하여 자동차가 대중화대기도 전에 1863년 클리블랜드에 정유소(精油所)를 설립합니다.

자동차가 대중화가 대면 반드시 가솔린이 필요할 것이고, 미국의 전역 곳곳에 주유소가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후 록펠러는 넓은 안목으로 1882년 미국 내 정유소의 95%를 지배하는 스탠더드오일트러스트를 조직하였고 이로 인하여 엄청난 부와 명예를 거머쥐게 됩니다. 

 
록펠러의 통찰력대로 핸리포드는 조립 라인 방식에 의한 양산체제인 포드시스템을 확립하여 그 밖에 수많은 기술상의 새로운 토대와 계획·조직·관리에 있어서 합리적 경영방식을 도입하였습니다. 그때가 1913년입니다. 

 
1914년에는 최저임금 일급(日給) 5달러, 1일 8시간 노동이라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노동정책을 폈습니다.

그의 산업철학은 제품가격의 인하로 판매량을 확대하고, 생산효율을 높이고 생산을 증대하여 가격을 더욱 낮춘다는 단순한 것이었다. 그로인하여 누구나 자동차를 싼 값에 구입할 수 있도록 시스템화 시켰습니다. 

 
포드자동차회사는 T형 포드로 미국 최대의 자동차 제조업체가 되어, 1924년에는 시장의 거의 반을 차지하였습니다.

 
여기에서 핸리포드와 록펠러는 0.9%의 통찰력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은 0.1%의 창의적인 사람과 0.9%의 통찰력있는 사람으로 인하여 그 분야에 발전을 가져오게 됩니다. 

 
세계인구의 0.1%의 특권은 신이 내린 천재성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그러나 0.9%의 통찰력은 미래를 긍정적으로 내다보는 힘과 모험정신입니다. 

 
15년 전만 해도 공권유술은 이제 막 내연기관을 갖춘 그래서 단지 자동차라고 이름만 붙여진 무술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공권유술의 기술체계를 시대에 맞지 않는 무술이라고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통찰력있는 0.5%소수의 무술인들이 공권유술을 찾아주었고, 이제는 그 빛을 발해 한국을 비롯해 세계 곳곳으로 전파되어 나가고 있습니다.


불과 10년까지만해도 인지 하지 못했던 한국무술은 이제 새로운 변혁기로 교체되는 길목에 서 있습니다.

동양의 무술도 서양의 무술도 변화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한국무술의 자부심을 느끼며 성장해가고 있는 0.5% 공권유술지도자들은 세계무술계의 판도를 바꾸고, 한국무술에 새로운 역사의 한 페이지를 함께 장식 할 통찰력있는 나머지 0.4%의 무술인들의 동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공권유술 사범과정 스페셜 세미나



* 시간: 2016년 1월 9일 토요일 오후 2시부터~5시까지 (5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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